1980년 아시안컵 준결승 북한전에서 정해원(오른쪽)이 헤딩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K리그 마라도나, 정해원

“골을 잘 넣으려면? 침착해야죠. 골문 앞에서 정확한 슛을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공격수는 바쁠 것이 없어요. 하지만 수비수는 무지하게 바쁘죠. 어떻게든 공격수보다 한 발 빠르게 공에 접근해서 걷어내야 하니까요. 공격수는 침착하게 수비수만 뚫으면 골을 넣을 수 있어요. 역할로 보자면 수비수가 불리한 위치에 있고, 공격수는 수비수보다 나아요.”

골을 넣는 것은 결국 골문 근처에서 펼쳐지는 공격수와 수비수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공격수가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여유를 찾고 정확하게 슈팅하라는 것이 그의 비결이었다.

K리그의 마라도나로 불렸던 정해원의 골 비결이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관계에서 공격수가 우월적인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고 여유있게 움직이라는, 이른바 상대성 이론이다. 그는 1983년부터 1991까지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선수로 뛰었고, 154경기에 출전하여 34골과 11도움 270개의 슛을 날렸다.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든 해트트릭을 3번 기록했고, 황금기였던 1986년에 10골로 득점왕과 베스트11, 특별상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도 6골과 4도움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11에도 선정됐다. 그는 A매치에도 58경기에 출전해 21골을 넣었다. 특히 남북경기에 두 번 뛰었으며, 1980년 대통령배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팀 5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환상의 드리블, 한국에는 정해원

1978년 10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정해원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상대의 경기에서 한 골씩 넣으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중공과 축구 경기를 가졌는데 2:1로 역전승했다. 준결승전에서는 북한을 만나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로 이겼고, 결승에 올라 이라크와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 4월 국내 축구의 개막을 알리는 가장 큰 대회, 대통령배쟁탈 전국축구대회에서 정해원은 연세대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에서 만난 육군팀 충의는 박성화, 조광래 등이 포진한 거의 국가대표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해원은 이 경기에서 순식간에 상대 수비 5명을 제치고, 마지막에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화려한 플레이로 드디어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성공시킨다.

뒤에 정해원은 한국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얻는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60m를 드리블하며 수비수를 제치고 세기의 골을 성공시킨 것보다 앞서서 현란한 개인기 드리블을 선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연세대는 2:0으로 승리해 대회에서 첫 우승했으며, 우승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정해원이었다.

1980년 9월 쿠웨이트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북한과 만났다. 정해원은 2년 만에 또 남북대결에서 뛰었다. 아시아청소년대회 때와 같은 4강 경기였다. 경기 종료 10분 전이었는데 0:1로 뒤지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이강조의 크로스가 올라왔다. 국가대표팀의 막내 최순호와 정해원이 골문 앞에서 점프했는데, 공이 최순호를 넘어 정해원의 머리에 맞고 골이 터졌다. 환호 속에 동점을 이뤘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왼쪽에서 이영무의 패스가 넘어왔는데 정해원은 지체없이 논스톱 슛을 했고, 마침내 드라마같은 역전골이 터졌다. 정해원의 두 골로 우리나라는 2:1로 승리했으며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1984년 4월, 20년만에 올림픽 본선에 오르기 위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 모든 힘을 모았었다. 정해원은 최순호의 도움을 받아 오른발 강슛으로 추가골을 넣어 2:0을 만들었다. 동점이 되자, 정해원은 후반 4분에도 헤딩슛으로 상대 수비수 맞고 들어가는 골을 성공시켜 3:2를 만들었다. 또다시 3-3 동점을 허용한 뒤 후반 28분에는 헤딩패스로 도움을 기록해 4:3으로 앞섰다. 결과는 4:5 패배였지만 아시아의 명승부로 추억되는 멋진 경기였다.

해트트릭으로 부활하다

1986년 10월 19일 대구.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유공과 경기에서 대우의 포워드 정해원은 해트트릭을 기록한다. 대표팀에서 탈락하고 슬럼프를 겪었던 그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사흘 뒤 10월 22일에도 해트트릭에 성공한다. 놀라운 2경기 연속 기록을 세우고 욕심이 생겼다.

“다음 경기가 럭키금성전이었어요. 세 경기 연속 해트트릭이 가능했죠. 페널티킥, 프리킥도 내가 차고 슈팅 기회도 많았는데 한 골도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정확하게 슛해야 했는데 욕심 때문에 실패했어요. 역시 여유를 가지고 침착해야만 골을 넣어요.”

하지만 2경기 연속 해트트릭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1984년 7월 22일 럭키금성 경기에서 성공한 해트트릭을 포함해 프로축구 3회 해트트릭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고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1987년 대통령배와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 대표팀에서 포워드로 뛰었다. 그가 공개한 또 하나의 비결이다.

“중거리 슛도 필요 없어요. 슈팅이 정확해야 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요. 11명이 함께 공을 연결해서 골문 앞까지 가도록 만들고, 골을 넣는 것이 축구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아시안컵에서 정해원의 포지션이 포워드에서 미드필더로 달라졌지만 홈팀 카타르와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골 감각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그가 대표팀에서 마지막으로 골을 넣은 것은 1989년 5월 23일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월드컵 1차 예선 첫 경기 싱가포르와 경기였다. 평소 잘 시도하지 않았던 중거리 슛을 날렸는데 골로 이어져 3:0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최종예선전에서 6승 무패 무실점을 기록하며 월드컵에 2회 연속 진출했다. 정해원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 뛰고 대표팀을 은퇴, 이듬해 K리그에서 두 경기를 더 뛰는 것으로 화려했던 선수 생활의 막을 내린다. 그가 후배에게 남긴 조언이다.

“공격수는 세밀하고 예민하게 플레이해야 하는데, 반복 훈련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아무리 좋은 선수라고 해도 다르지 않죠. 평소에 반복 훈련을 충분히 해야 하고, 실전에서 영리하게 판단하면 골을 많이 넣을 수 있습니다.”


(정해원 : 1959년 출생. 1978년 청소년대표팀. 1980-1990년 국가대표팀. A매치 통산 58경기 21득점. K리그 해트트릭 3회. 현재 정해원 축구교실 총감독.)

출처 : 대한축구협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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