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게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이상윤
아니 왜 이제서야 전화하셨어요? ”

K
리그의 전설 코너를 취재하고자 전화연락을 했을 때 이상윤(39, 현 차범근축구교실 수석코치, MBCESPN 해설위원)은 밝은 목소리의 재치 있는 대답으로 웃음을 주었다. 이 전화통화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한껏 기대가 되었다
.

한강 둔치 차범근 축구교실이 열리는 토요일 오후 아이들과 즐거운 축구교실을 진행하고 있던 그는 이내 알아보고 선뜻 인사를 건넨다. 밝은 미소와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아이들로 하여금 축구의 즐거움을 몸소 체험하게 하고 있었다.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띄운 얼굴로 주위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그의 인생 속에서 축구를 찾아보았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어요. 동네 조기축구에 아버지께서 다니셨는데 거기에 따라갔다가 아버지께서 뛰시는 모습을 보고 축구를 좋아했었죠. 제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된 때는 초등학교 시절이었어요. 동두천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축구부가 원래 4학년부터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제가 2학년 때부터 단지 축구가 좋아서 수업 끝나고 항상 기다렸다가 축구부 연습 때 형들과 함께 공을 찼었어요. 제가 4학년 때 전농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제가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축구는 어렵겠다고 하셨는데 오기로 했어요. 부모님께서도 제가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드렸더니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시더라구요. 특히 아버지께서도 축구를 좋아하시니깐 더 밀어주셨어요. 잘 뛰는 유전자도 주시고 후원도 해주신 거죠.

학창시절 기억나는 지도자가 있다면..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다 기억나죠. 정말 한 분, 한 분 모두가 제 소중한 스승님들이시죠. 특히 건국대 시절에 함께 동고동락하시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끌어낼 수 있게 해 주셨었던 정종덕 감독님과 중학교시절에 항상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던 이내창 선생님, 그리고 초등학교시절 기본기를 탄탄하게 지도 해 주셨었던 최민선 선생님까지 제겐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입니다. 저도 아이들을 지도할 때 마다 그 분들께서 제게 주셨던 그 인생의 가르침들을 항상 잊지 않고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K
리그 이야기를 해보자. 데뷔시절이상윤은 어떤 선수였나
한참 대학 때 정종덕 감독님의 가르침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축구를 예쁘게 찬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당시에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있어서 프로에 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그 당시 감독님께서너 만큼 연습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을 실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학창시절은 축구밖에 없었거든요. 공식 연습 끝나고 남아서 드리블 연습을 했으니깐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하는데 당시에는 축구가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더라구요. 드래프트에서도 성남(당시 천안 일화) 1순위로 지명되어서 기쁨이 남달랐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 부모님이세요. 잘하든 못하든 항상 칭찬해 주시고 밀어주셔서 신인 이상윤은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유소년 축구를 지도하고 있는 이상윤 수석코치>


천안 일화(현 성남)에서 10시즌 273출장에 70골을 기록했다. 고른 기록의 비결이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과거에는 제가 너무 소심했어요. 이런 제가 바뀌게 된 계기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부터 였어요. 당시에 황선홍, 홍명보와 함께 차출되어서 나갔었는데 당시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축구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기억들, 그리고 세계 축구를 처음으로 접했던 일들이 저를 변하게 했죠. 이런 긍정적인 변화들이 조금씩 이어지게 되었고 꾸준하게 연습과 몸 관리를 반복했기에 그런 출장 기록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슬럼프도 있었죠. 당시 일화를 맡으셨던 박종환 감독님께서는 많이 뛰는 압박축구를 요구하셨고 제 스타일은 테크닉 위주로 플레이를 했었거든요. 대학 때까지만 해도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했었는데 프로에 와서는 그 자리가 사라졌던 거죠. 그래서 잠시 방황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꾸준한 연습으로 팀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좋은 결과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제 선수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천안일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93 MVP를 탔던 순간이었어요. 그 당시에 좋은 팀 메이트들 김이주, 신태용, 고정운, 신의손 등 팀 전체가 하나가 되었고 진정한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결과로 탄탄한 팀이 되어서 이후 3년 동안 우승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95년도 포항과 챔피언 결정전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에 감독님과 포지션 문제로 출전시간이 좀 적었는데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선수로 나가게 되었고 골든골을 넣으면서 우승하게 되었었는데 그 당시 기억도 많이 난답니다.

<93 MVP 수상 당시, 감독상을 수상한 박종환 감독과 함께>


당시 천안 일화에서 프랑스 FC로리앙으로 이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어떠했었나
공교롭게도 얼마 전 AS모나코로 진출한 박주영선수가 데뷔전을 치른 상대팀이 제가 진출했던 팀이더라구요. 당시에 저도 프랑스에 진출한 첫 경기를 너무 잘 치뤘어요. ‘아 이정도면 나도 가능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당시에 팀이 생각하고 있었던 제 역할은 풀타임 측면 공격수가 아니었어요. 주전 공격수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조커가 필요했던거죠. 근데 저는 풀타임을 뛰어야 제 기량을 보여 드리는 스타일이었고 원하는 역할 간에 서로 차이가 있었던거죠. 당시 안타까웠던 점은 그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었던 점이에요. 제 생각과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되요. 그래서 이미 진출해 있는 박지성, 이영표, 김두현, 설기현 선수들이 저는 참 대견해요. 그 차이를 극복해내고 있다는 증거니깐요. 더 나아가 박주영 선수도 잘 적응해서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별명이팽이이상윤이다. 팽이란 별명의 유래가 궁금하다.
제 팽이란 별명은 신문선 해설위원이 지어주셨어요. 저는 별명이 지어진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팽이가 계속 돌 듯이 저두 계속해서 뛴다고 지어주셨나봐요. 또 다른 분들은 팽이 같이 돌아도 돌아도 항상 다시 제자리에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시더라구요. 지금도 기 별명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하기만 하네요.

근데 그때뿐만 아니라 은퇴한 지금도 계속해서 저는 팽이입니다. 계속 돌고 있다는거죠. 아뇨 더 돌아야죠. 제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팽이처럼 돌 수 있는 팽이 이상윤이 될거에요
.

은퇴는 끝이다.. 아니 다시 시작이다.
그가 축구계를 아쉽게 떠나면서 했었던 생각들은 자나깨나 한국축구의 발전이었다.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그런 노하우들이 씨앗이 되어 K리그를 비롯한 한국축구가 바로 서는데 일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은퇴한 지금이 선수시절의 그보다 더 바빠졌다.

현재 세 가지의 일을 병행하고 있어요. 우선 7년 째 차범근축구교실 수석코치를 맡아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고요, MBCESPN 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해설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축구협회 유소년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일들이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삶을 살아가는 활력을 주거든요
.”

그는 그가 사랑한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싹부터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시작하는 일을 그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소망했고 현재도 많은 부분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에게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부터 그의 전매특허였던 헛다리짚기까지를 하나하나 전수하고 있었다
.

유소년 축구의 발전은 한국 축구가 진정으로 발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참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나 분과위원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방향을 설정할 때 마다 이 생각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올해 K리그에서 추진하는 유소년 클럽 축구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팬들이 원하는 유럽식의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있는 초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아들들을 비롯해서 축구를 사랑하는 유소년들이 진정으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차범근
축구교실.. 그의 재기의 발걸음을 시작하다.
제주(당시 부천SK)라는 팀에서 아쉽게 은퇴를 하고 서울 시청으로 옮긴 그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건 바로 중국리그로의 진출. 당시 2부리그 격인 을()리그에서 승격을 목전에 두고 있는 팀에서의 활약이었다. 한 달여 그의 기량은 출중했지만 당시 팀이 1부리그 인 갑()리그로의 진출이 좌절되면서 어쩔 수 없는 귀국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현역으로서의 발걸음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팀이 승격이 안 되면서 당시에 보장되었었던 제 자리가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국내로 돌아와서 실업축구로 잠시 진출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차범근 감독님께서 저를 불러주셨어요. 본인이 하시는 일이 있으시기 때문에 책임지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밤낮으로 고민했어요. 선수로서 저의 길은 여기까지인가 하고 고민이 많았죠. 당시에 기도를 많이 했는데 결국  차범근 감독님의한국의 미래를 네게 맡긴다고 수차례 말씀하셨고 그 때 제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전 우리나라의 미래에게 다른 것이 아닌 축구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해요”.

 
행복을 찾아서..조연 이상윤
어느 새 그는 미래의 꿈을 꾸고 있는 어린 꿈나무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었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그의 몫을 톡톡히 해 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건강했고 자신감이 가득했었다. 그는 행복을 찾은 것일까..

축구교실을 하면서 느끼게 된 건데 아이들이 크게 두부류가 있어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하는 아이들과 처음에는 운동장에도 들어오기를 꺼리는 아이들로 나뉘어져요. 근데 이 섞이기 힘든 두 친구들이 축구라는 매개체로 인해서 같이 뛰면서 호흡하고 웃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갈 때 참 기뻐요. 사람의 성격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가르치고 있는 축구로서 아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 참 기뻐요. 특히 제가헛다리짚기의 원조잖아요. 그 기술을 이 친구들이 쓰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많이 웃었어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때까지 튼튼하게 계속 운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느 새 내 제자가 한국축구의 미래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었는데 그 때 참 기뻤었던 것 같아요
.”

새로운 자아의 발견,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도전
2006
년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던 축구팬들은 새로운 목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치 자신이 골을 성공시키지 못한 듯 탄성을 지르며 축구를 관람하는 자신들보다 더 흥분해 있는 캐스터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삽시간에 각종 인터넷 포털에막걸리해설가란 별명을 얻으며 혜성처럼축구해설가이상윤이 등장한 것이다. 소심한 그에게서 축구는 새로운 삶을 그에게 선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원래 참 소심했어요. 제가 방송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원래 MBCESPN에서 중계를 하기 전에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가끔씩 객원해설을 하긴 했어도 그 만큼 입담이 좋지는 못했어요. 저 선수생활 할 때 고정운선배가네 성격이 조금만 적극적이었다면 축구의 한 획을 그었을 것이라고 했었을 정도니까요. 맨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땐 마구 들이댔던 것 같아요. 준비도 많이 해갔었는데 아쉬운 순간이 나오면 선수생활 할 때 그 아쉬웠던 순간들이 자꾸 생각이 나니깐 저도 모르게 경기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감탄사가 섞여 나왔어요. 순간 아차 싶었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들을 시청자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구수하다고 표현해주시는 거죠. 너무 저는 감사하구요 지금도 많이 부족해서 경기가 있는 주중에는 틈나는 대로 경기를 분석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두툼한 해설 자료는 그의 삶 속에서 새롭게 시작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

2010 Project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2010년에 무슨 일이 있을지 예상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지역에서 최초로 열리는 월드컵을 오늘의 주인공 이상윤은 남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

제가 현재 꿈꾸고 있는 가장 큰 꿈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해설을 맡고 싶어요. 그 땐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저희 차범근 감독님과도 대결을 벌여보고 싶어요(웃음). 그 곳에서 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해서 뛰고 있는 모습을 진정으로 전달해 드리고 싶어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서 국가 대표 급 해설을 하고 싶어요. 방송을 하면서 제 많은 부분들이 변화되었거든요. 잘 웃게 되었고 좀 더 밝아진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어요.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축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인생에서 축구란 단어는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이상윤=축구라는 공식이 성립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에서 축구란 어떤 의미이었을까?

제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참 감사한거죠. 제가 축구를 선택함으로 인해서 제가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울러 사랑하는 제 가족들도 만나게 되었고요. 지금까지도 축구와 관련된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는 감사한 일이었어요
.
지난 번에 축구장에 물을 채워야 한다는 댓글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이 바로 한국축구가 다시 뛰어 나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물론 축구선수들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하겠지만 그 선수들의 기량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팬들의 성원인 것 같아요. K리그 경기장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시라고요. 그분들과 함께 항상 발전하는 K리그와 K리그의 축구팬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받았던 만큼 베풀고자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굵은 그의 족적을 한국축구에 계속 남기며 항상 자신의 모든 일에 감사와 미소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K리그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활기찬 팽이 같은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 한국프로축구연맹 구웹사이트
편집 : 한국축구역사통계연구소
저작자 표시

'K리그의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K리그 레전드 - 신의손  (0) 2012/01/09
K리그 레전드 - 김경래  (0) 2012/01/09
K리그 레전드 - 이상윤  (0) 2012/01/09
K리그 레전드 - 김봉길  (0) 2012/01/09
K리그 레전드 - 신홍기  (0) 2012/01/09
K리그 레전드 - 이기근  (0) 2012/01/09
Posted by 한국축구역사통계연구소
◀ PREV : [1]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 [125] : NEXT ▶

BLOG main image
by 한국축구역사통계연구소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보기 (125)
사진으로 보는 한국 축구 (4)
K리그 역사 바로 알기 (9)
K리그의 전설 (42)
K리그 꿈의 구장 (2)
축구인 인터뷰 (68)
K리그 역대 순위표 (0)
K리그 역대 수상 내역 (0)
K리그 역대 엠블럼 (0)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otal : 38,761
Today : 25 Yesterday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