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수비를 대표했던 정용환
1985년 10월 26일 도쿄 국립경기장.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가 열렸다. 줄곧 1차 예선에서 탈락했던 일본은 모리 감독을 통해 월드컵을 목표로 4년간 준비했다. 일본의 무기는 공포의 스트라이커 하라, 미즈누마, 플레이메이커 기무라.

김정남 감독은 경기 전에 중앙 수비수 정용환에게 하라를 대인마크하도록 맡겼다. 그리고 훈련 내내 ‘정하라’라고 부르며 강조했다. 6만 여 홈 관중 응원 속에 일본은 본선 진출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스트라이커 하라를 막는 것은 한국이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것과 직결되는 승부였다.

전반 30분 한국이 코너킥을 얻어냈다. 장신 하라가 헤딩을 하기 위해 자기 수비 지역으로 내려갔다. 정용환도 따라붙었다. 코너킥한 공이 문전에서 양 팀 선수의 맹렬한 움직임 속에서 튀어나와 페널티 지역 밖으로 흘렀다. 정용환의 발에 걸렸다. 곧바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렸고, 공은 골지역의 많은 선수들 틈을 뚫고 그물을 흔들었다.

정용환은 이후에도 지치지 않고 90분 내내 일본의 희망이었던 하라의 공격을 차단했다. 하라는 끝내 골을 넣지 못했다. 한국은 정용환의 선취골과 철벽 수비에 힘입어 원정에서 2:1로 이기고, 홈에서도 1:0으로 이겨 드디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1984 싱가포르 아시안컵, 1986 멕시코 월드컵,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우승, 1988 서울 올림픽, 1988 카타르 아시안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주장), 1990 북경 다이너스티컵 우승(주장), 1990 북경 아시안게임(주장), 1990 남북통일친선축구 홈 앤 어웨이(주장), 1992 북경 다이너스티컵 준우승(주장). 이것이 모두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1년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수비수 정용환의 이력이다. 정용환은 프로축구에서도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1년간 대우(현 부산) 한 팀에서 뛰며 168경기에 출전했다. 1984·1987·1991 정규리그에서 세 시즌 우승, 1986 아시아클럽챔피언십 우승, 1987 아프로-아시안클럽 챔피언십 우승까지 달성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 도쿄 원정 경기 라인업. 아랫줄 오른쪽 끝이 정용환
플라타너스를 향해 뛰어라

“정용환은 수비 헤딩이 탁월했어요.”
대표팀 동료였던 박경훈 감독(현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의 평가다. 박경훈, 정용환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환상의 수비 콤비를 이루었다. 1980년대 한국의 철벽 수비수 정용환은 수비 헤딩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그의 헤딩 능력은 어떻게 길러졌을까.

“제 키 178cm는 수비수로서 큰 키가 아니에요. 하지만 10cm 이상 컸던 190cm의 김용세나 197cm인 렌스베르겐에게도 헤딩에서 뒤지지 않았습니다.”

정용환이 프로에 데뷔했던 1984년에 막아낸 장신 공격수들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렌스베르겐은 대우의 후기리그 우승 때 막판까지 경쟁했던 현대의 공격수였고, 김용세는 전기리그 우승팀 유공의 공격수로 전기리그 득점왕이었다. 정용환은 자신의 헤딩이 엄청난 시간 투자 덕분이라며 수비와 훈련의 비결을 소개했다.

“제게 헤딩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베어낸 가로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나무 그루터기 양 옆으로 뛰었죠. 낮은 울타리를 지날 때도 이편저편으로 뛰어 넘었습니다. 거리에 플라타너스가 많았는데 그 잎이 커다랗고 축구공만해서 플라타너스 잎을 향해 수없이 뛰었습니다. 그게 헤딩 연습이 많이 됐어요. 동래고에 팬듈볼이 있었는데 그걸로도 엄청 연습했습니다. 아마 지금 하라면 못할 거예요.”

초등학교 때 신체 조건이 좋아서 축구와 육상을 5학년 때까지 했으나 6학년 때 축구부가 없어졌다. 그래서 핸드볼, 멀리뛰기, 높이뛰기를 했다. 하지만 축구가 가장 좋았던 그는 축구부가 만들어진다기에 장안중학교에 입학했다. 축구에 대한 의욕 때문에 친구와 둘이 3학년 때 부산진중학교로 전학했고, 대한축구협회장배 정상에 올라 드디어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동래고 진학은 그의 축구 인생에 날개를 다는 것과 같았다.
김호곤, 박성화, 최영일, 김치곤 등 대표적인 수비수가 동래고 출신이다. 마침 김호 감독도 부임했다. 동래고에 그가 말한 팬듈볼이 있었다. 높은 곳에 공을 매달아 놓고 필요한 연습을 하는 기구다. 정용환은 팀 훈련에도 삼십 분 먼저 나오고, 훈련 뒤에도 혼자 남아 한 시간씩 연습했다. 교실 건물에서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였는데 정용환의 연습은 전교생이 알 정도였다. 그는 또 운동장 옆의 테니스장에서 네트를 이리저리 뛰어넘으면서 점프 연습을 했는데,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호 감독은 속으로 정용환의 성공을 예상했다고 한다.
1989년 5월 한일정기전에서의 정용환(아랫줄 오른쪽에서 2번째)
발뒤꿈치는 들고, 버스 손잡이는 잡지 않았다

“수비수는 늘 공격수를 따라잡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경기 내내 언제나 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죠. 저는 발을 모두 땅에 붙이고 있던 적이 없다시피 했어요. 몸의 중심을 발 앞쪽에 두면 살짝 뒤꿈치가 들려요. 부산진중학교 때부터 동래고등학교에 있는 동안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는데, 걸음걸이가 이상하니까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을 겁니다.”

생체학적으로 공격수의 움직임에 대한 수비수의 반응시간은 0.2∼0.4초.
반응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까지 합하면 0.5∼0.6초쯤 걸린다. 축구 선수의 100m 달리기는 12초대. 공격수가 회전력과 속도를 예측하여 ‘공의 갈 길’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상대 수비수보다 0.25∼0.35초 먼저 움직일 수 있다. 0.25∼0.35초 동안 약 2.08∼2.92m를 앞설 수 있다. 골대 앞 20m 지점이라면 50∼63cm 정도 앞서 갈 수 있다. 공격수가 반응 시간을 노리고 동작을 반복하면 간격이 더욱 벌어진다. 수비수는 무리하게 몸을 틀게 되고 공격수는 이 틈을 활용해 패스를 하거나 슛을 날린다.

“상대 스트라이커가 몸의 방향만 틀어도 저는 스타트를 끊었죠. 수비는 공격보다 두세 발 더 뛰어야 하고, 더 빨리 뛰어야 합니다. 그 순발력과 균형감각을 기르기 위해서 버스나 기차를 타면 손잡이를 잡지 않았습니다. 예측하고 준비하면 파울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공격수에게 판단이나 속도가 뒤지면 파울을 하게 됩니다.”

정용환은 수비수이면서도 프로축구에서 8년 동안 100경기 넘게 뛰면서 경고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서른세 살 되던 1992년에 처음으로 경고를 받았다.

내 의도대로 공격수를 한쪽에 두고 몰았다

“수비수는 원래 공격수한테 끌려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끌려가면 질 수 밖에 없어요. 먼저 움직임을 해서 오히려 공격수를 속이는 거죠. 속임수 동작을 쓴 뒤에는 미리 예측하고 공격을 따라잡았습니다. 많은 공격수가 걸려 들었습니다. 특히 내가 편한 쪽으로 자리를 잡고 한쪽을 비워두면 공격수는 빈 공간으로 뛰어듭니다. 그건 의도했던 바니까 나는 준비하고 있던 플레이를 합니다. 그렇게 한쪽으로 몰아두고 달려들면 뺏거나 걷어낼 수 있는데, 안정된 수비를 할 수 있죠.”

1985년 일본과 경기 때 그는 미리 예측하고 자리를 잡았다. 예측한대로 움직이고, 공이 투입될 때 공이 오는 방향으로 공격수보다 먼저 가 있었다. 그리하여 하라를 꽁꽁 묶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그는 공격수에게 까다로운 수비수였다. 유공의 박윤기는 대우의 정용환을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수비수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윤기는 프로축구 1호골의 주인공이자 K-리그 첫 득점왕이다.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스타 허정무도 가장 대인마크를 잘 하는 수비수로 정용환을 꼽았다.
1990년 다이너스티컵에서 우승한 후 주장 정용환이 우승컵을 높이 들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축구를 배우는 동안 제게는 이런 좌우명이 있었어요.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감독이 본다고 해서 훈련하고, 없다고 훈련하지 않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는 부지런한 노력형이었다.

“새벽 훈련을 쉬어본 적이 없었지요. 남들이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러 갈 때, 당구장·커피숍에 갈 때 저는 메모하고 생각을 하면서 휴식했습니다. 저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코치님이나 선배·동료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었습니다. 훈련이나 기술에 대해서도 자로 긋고, 볼펜의 색깔까지 파란색·빨간색으로 바꿔가며 항상 메모를 했죠.”

정용환은 훈련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했다. 수비의 대가 정용환의 비결이다.

(정용환 : 1960년 출생. 1979년 청소년대표, 1983~1993년 국가대표 선수. A매치 77경기 3득점. K리그 168경기 9득점.)


글=손성삼(KFA 기획실 과장)
출처 : 대한축구협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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