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스트라이커였던 최순호 ⓒ울산미포조선
그라운드의 저격수, 최순호.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관심의 대상이 된 그는 1979년 일본 세계청소년대회와 1981년 호주 세계청소년대회에 참가했다. 1981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4경기에 출장해 4골을 넣었으며, 결승에서는 홈팀 태국을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냈다. 아시아대회 우승 후 호주 세계청소년대회 본선에서 2골 2어시스트를 성공시켜 이탈리아에게 4-1로 이기는데 기여했다.

또한 만 18세 되던 1980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1991년까지 A매치 94경기에 나서 30골을 넣었다. 1980년 쿠웨이트 아시안컵,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1979년 포철(현 포항)에 입단하여 럭키금성(현 FC서울), 다시 포항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프로 통산 100경기에 출장해 23골-19도움을 기록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기술위원으로 참가했고,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거쳐 현재 울산현대미포조선 감독으로서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걷는 최순호. 그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떠올리며 공격 비결을 듣는다.

스트라이커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는 공격수입니다. 스트라이커는 플레이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골 마우스에서 움직임이 좋은 스트라이커입니다. 득점력이 높은 공격수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죠. 우리나라 공격수 중에 이태호와 황선홍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활동의 폭이 넓고 움직임이 좋아서 사이드까지 오가며 상대 진영을 좌우로 흔들어놓고, 득점에도 기여하는 스트라이커입니다. 차범근과 정해원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범근 선배의 경우는 특히 오른쪽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좋았죠. 그러나 독일에 진출해서는 미드필더에서 좋은 패스가 많이 넘어오면서 첫 번째 유형에 가까워졌다고 봅니다.”

스트라이커 최순호의 플레이를 두 유형에 따라 분류하자면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던 해인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첫 번째 유형에 해당했다. 최순호는 대표 선수가 되어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초기 3~4년 동안 공격 지원을 잘 받았어요. 패스가 좋은 선배도 많았고, 대표팀 구성이 좋아서 기막힌 어시스트를 받으며 골을 많이 넣었지요.”

1983년을 기점으로 그의 공격 플레이는 달라졌다.
“골 넣는 플레이도 좋지만, 골을 만드는 플레이가 좋았어요. 패스에 자신감이 생겼고 시야도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에게 미드필더 쪽으로 뛰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요.”

최순호는 1982년까지 화려한 득점 행진을 펼치며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1983년에 국가대표팀에서 1골을 넣는데 그친다. 동대문에서 열린 대통령배 결승 경기에서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을 상대로 넣은 것이 전부다.

팀 동료들의 어시스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본인의 플레이를 바꾸어 동료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패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대표팀이나 소속팀에서 이전까지 도움 기록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1984년에는 득점만큼 도움을 기록했고, 그 후로는 득점보다 도움이 두 배로 많아졌다. 프로축구 100경기 출장한 그는 23골을 넣었고, 어시스트를 19개 기록했는데 어시스트는 모두 후반에 몰려있다.

우리나라가 1986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32년 만에 진출할 때도 월드컵 예선 8경기에서 1골을 넣고 8골을 도왔다. 8경기에 모두 17골이 터졌는데 절반 이상인 9골을 만들어 냈다. 3경기를 뛰면 1경기는 그의 바람대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2경기는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뛰었다. 플레이에 변화를 주고 나서 오히려 득점력이 살아났다. 감독들은 그에게 골을 요구했고 그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1986년 6월 2일 멕시코시티 올림피코68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 첫 경기. 32년만의 월드컵 본선에서 아르헨티나와 맞붙었다. 최순호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 네스토르 클라우센이 끝까지 따라붙는다.
스트라이커는 모험심이 강해야 산다.

최순호는 공격수 겸 미드필더로서 한국축구 1980년대를 꽉 채워준 손꼽히는 공격수이다. 185cm의 장신이면서도 볼 터치가 유연했고, 섬세한 드리블, 정확한 슈팅이 장기였다. 그의 패스는 상대 수비의 허를 찔렀고, 시야도 넓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세 번째 경기에서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를 만났을 때, 후반 17분 페널티 지역 왼쪽 외곽에서 수비를 제치고 오른발 강슛으로 멋진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꼽는 멋진 골은 따로 있었다. 바로 1980년 5월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고 대표팀에서 처음 성공시킨 골들이었다.

“복잡한 밀집 지역에서 수비들 따돌렸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1차전에서는 뒷발이었던 왼발 인사이드킥으로 골을 넣었고, 2차전에서는 오른발 슛으로 골인, 3차전에서는 왼발 중거리슛이었죠. 이후에 넣은 다른 골이나 슛은 이에 비하면 평범했습니다. 세 경기에서 성공시킨 연속골은 인상 깊고, 거의 완벽했어요.”

최순호는 1980년 5월 국가대표팀에 합류했고, 대표팀은 7월에 포르투갈의 프로축구팀 보아비스타를 초청해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과 부산에서 세 차례의 평가전을 가졌다. 그는 3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어 축구팬을 열광케 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첫 골은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에서 재치있는 순간 감각으로 왼발 힐킥을 성공시킨 것이었다. 그의 결정적인 골 비결이다.

"골을 넣으려면 슈팅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침착함이 필요해요.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많이 조언하는 것인데,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침착성이 중요합니다. 좋은 자세와 여유는 침착해야 가능합니다. 균형을 잃으면 슈팅의 정확성도 떨어지고, 강도도 떨어져요."

"또 딛는 발의 모양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늘 공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해요. 축구를 할 때는 그라운드 위를 구르는 공의 흐름이 있습니다. 공의 흐름에 따라서 위치를 잘 잡아야 하죠. 공의 흐름을 읽으려면 공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공의 흐름을 알면 어느 정도 여유도 생기고 움직임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다음 자신 있게 슈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험심이 강해야 스트라이커로서 성공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정확하게 슈팅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골을 많이 넣는 공격수는 이러한 면에서 탁월합니다."

그의 공격 비결을 받아 적고 나서 보니, 마치 공격에 관한 강의 내용 요약처럼 읽힌다.
그는 지도자로서 빠르고 정확하며 다이내믹하고 스케일이 큰 축구를 선호한다고 했다. 끝나지 않은 공격수의 인생이 지도자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한국 축구의 골을 위하여.

(최순호 : 1962년 출생. 1979~1981년 청소년대표, 1980~1991년 국가대표 선수. A매치 94경기 30득점. 프로 통산 100경기 23득점 19도움. 현 울산현대미포조선 감독.)

글=손성삼(KFA 기획실 과장)
출처 : 대한축구협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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