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대표팀을 맡고 있는 홍명보 감독 ⓒ스포탈코리아
1990년대 최고의 중앙 수비수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3년간 한국 최고의 스위퍼였던 홍명보. 그는 월드컵 본선에 4회 연속 참가했으며,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공격수와 교체시킨 세 경기를 제외하면 풀타임으로 뛴 것만 열세 번이다. 국가대표팀 공식경기 참가 기록 135경기에서도 132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감격적인 두 골을 기록했다. 첫 경기 스페인 경기에서 프리킥 만회골과 서정원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해서 2-2 무승부를 만들었고, 세 번째 경기 독일 경기에서는 중거리 슛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1992년 프로 데뷔하던 해에도 리그 막판에 박빙으로 우승 경쟁을 다투던 상대 현대(현 울산)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프로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넣으면서 1-0 승리로 소속팀 포항의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 MVP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K-리그 베스트 11에 다섯 번 뽑혔고, J리그에서 최초로 외국인이면서 주장을 맡았다. 한-미-일 세 나라의 프로리그에서 올스타로 선정됐으며, 세 리그에서 모두 소속팀의 주장을 경험했던 홍명보. 그의 수비 비결을 듣는다.

못 막으면 동료가 막도록 자리 잡아라

“수비의 기본적인 책임은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것이지만, 꼭 내가 공을 빼앗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공격해오는 상대 선수와 1vs1로 마주해서 제압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빼앗기 위해 무리하거나 오기를 부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공격을 차단하기 곤란할 때라도 자리를 잘 잡는다면 동료 수비수에게 걸려서 차단되거든요. 내가 못 막았을 때 동료가 잘 막을 수 있도록 협력 수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수비수의 위치 선정은 언제나 매우 중요해요.”

1994년 홍명보가 K-리그의 베스트 11에 뽑히던 해에 리그 득점왕이었던 윤상철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신인이었을 때부터 공격의 맥을 끊는 영리한 플레이를 했어요. 수비수라면 공격을 끊기 위해 덤비기 마련입니다. 다른 수비수는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곤 했는데, 홍명보는 다음 상황을 보면서 기다렸습니다. 공격 속도를 주춤하게 만들었죠.”

공격수에게 덤비기 전에 생각할 것이 위치 선정이다. 자리를 잘 잡고 공격수를 상대하면 1vs1에서 동료와의 협력 수비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 수비수의 공 배급 중요

“우리 팀이 상대로부터 공을 빼앗았을 때 공격적인 패스를 잘 해야 합니다. 수비수의 공 배급은 아주 중요해요. 수비수의 패스는 공격의 시발점이기도 하죠. 공 배급이 잘되면 수비를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 닥치지도 않습니다. 저는 고려대 3학년 때 미드필더에서 스위퍼로 내려왔지만, 특별히 수비수로서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비수가 되고 나서도 공격적인 패스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국가대표팀의 딕 아드보카트와 핌 베어벡 감독이 일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수비수 K를 기용하며 강조한 것이 바로 수비수의 공 배급, 공격을 시작하는 패스였다. 수비가 공을 잡았을 때 전방으로 향하는 볼 배급은 공격이자 훌륭한 수비라고 할 수 있다.
ⓒ스포탈코리아
키 너무 작아서, 그리고 너무 커서 축구 포기할 뻔

“수비를 위해서 타고 나야할 중요한 신체 조건이 키와 스피드라고 생각합니다.”

수비의 명수지만 그는 키 때문에 두 번이나 축구를 포기할까 고민도, 그리고 염려도 했다. 점심시간과 수업을 마친 뒤 축구에 몰두했던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하기로 결심했으나 외아들이었던 그는 부모님 반대로 4학년 때까지 공부를 했다. 5학년 때 드디어 코치의 설득에 힘입어 축구부에 들었다.

광장초등학교 레프트 윙으로 활약했던 그는 광희중학교, 동북고등학교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다. 중학교 첫 연습경기에서 코치가 작다고 제외시켜서 실력 발휘할 기회도 잡지 못했을 때나, 체력적으로 열세를 절실히 느꼈던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하도 서러워서 축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168cm였던 키가 2학년 때부터 10cm씩 쑥쑥 자랄 때는 농구선수 한기범처럼 키가 커서 축구화를 벗는 악몽을 꾸며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큰 키는 무게 중심을 잡거나 밸런스 조절과 유지가 어렵다고 생각돼 키가 더 클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어느 포지션이나 중요한 기본기 훈련

“저의 기본기는 광희중에서 굳게 다져졌습니다. 당시 임흥세 감독님은 여름 땡볕에서 시원한 물도 통제하면서 볼 트래핑과 슈팅 등 기본 기술 연습을 시켰어요. 특히 인스텝, 아웃스텝을 바꾸어 연습하도록 1시간 넘게 공을 던져주시던 것과 바른 슈팅 방법, 그리고 생각하는 축구를 하도록 지도하셨는데, 당시에는 지겹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는 듣기 싫어 귀를 틀어막고 싶었던 그 말이, 그리고 반복 연습이 오늘날 제게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기본 기술의 연습을 철저히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일심(一心)이다. 축구가 인간의 일생처럼 정직한 운동이라고 믿었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행운과 복이 찾아온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속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축구를 즐기자고 다짐했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하여.

(홍명보: 1969년 출생. 1990~2002년 국가대표 선수, A매치 135경기 9득점. 1992~2002년 K-리그 156경기 14득점 8도움, 1997~2001년 J리그 114경기 7득점. 현 U-20 대표팀 감독)


글=손성삼(KFA 경기국 등록팀 과장)
출처 : 대한축구협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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