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현, 그리고 끝나지 않은 도전 - 박창현

꾹 참으면서 기다리다가 빛을 발하는 스타들을 우리는 흔히신데렐라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이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열광한다. 자신도 참고 견디다 보면 현실의 문제에서 승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사람도 생긴다. 프로축구 26년의 역사동안 수많은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그 중 포항 팬들의 뇌리에 박혀 잊혀 지지 않고 있는 92년의 신데렐라를 만나러 가보자.


통한의 북한전, 3번의 찬스를 놓치다
이회택 감독이 1990년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기 위해 한양대를 떠나고 나자 스승을 잃은 박창현은 잠시 방황을 하게 된다. 방황을 하던 박창현을 바로 잡아준 것은 바로 9 뉴스에서 나온 의외의 낭보. 무심결에 본 TV에서는 박종환 감독이 88올림픽 대표팀 명단을 발표 하고 있었다. “한양대학교 박창현.” 자신의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했다는 박창현 코치. “당시에 저는 제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축구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바로 심봉섭이라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죠.” 전화를 받은 심봉섭 선수는 거짓말 마라며 믿지 않았고, 결국 집으로 확인 전화를 하자 봤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창현은 인생 최고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킹스컵 대회본부는 경기 흥행을 위해 한국과 북한의 경기를 개막전으로 정했다. 홍콩국립경기장을 가득채운 3만명 이상의 관중과 난생 처음 해보는 야간 경기, 게다가 상대는 북한. 올림픽 대표팀 데뷔전은 여러 가지로 박창현에게는 어려웠다. 하지만 북한전에서 한 골이라도 넣는다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는 5공 시절이었기에 일본보다 오히려 북한이 더 이겨야만 하는 상대였다. 더군다나 이기고 돌아온 선수단에게는 훈장이 주어졌다고 하니 그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90
.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박창현에게 그날의 기억은 없다. 자신이 경기를 했지만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숨이 터지지 않는 이상한 밤이었다. 하지만 그가 평생 잊을 수 없다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그에게 온 3번의 찬스.


골키퍼가 나오는 상황에서 잡은 일대일 찬스에서 그 짧은 순간에 발등으로 차야하는지 혹은 발끝으로 차야하는지 생각을 했죠. 발등은 늦다 싶어 발끝으로 찼는데 이게 골키퍼 정면으로 가서 맞고 나왔어요. 그런데 흐르는 볼을 우리편이 찼는데 또 저한테 왔어요. 이게 두 번째 찬스였죠. 1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찼는데 골키퍼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또 막혔죠. 그리고 후반전에 한 골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골키퍼까지 제치고 빈 골대로 제가 볼을 밀어 넣었어요. 골이 들어갔다 싶어 세레머니를 하려 돌아서는데 아뿔사! 심봉섭 선수의 문전쇄도를 막으려던 북한의 풀백 김광민 선수가 얼떨결에 그 공을 걷어내 버리더군요. 결국 1 0으로 경기가 끝났죠.” 당시의 장면이 아직도 떠오른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그는 결국 나머지 경기에 출전을 했지만 결국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는 평가만을 안고 선수단과 쓸쓸히 귀국하고 말았다. 그리고 88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결정되면서 그는 팬들의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입단

4
학년 때 허벅지 근육이 끊어져 6개월을 쉬면서 박창현은 또다시 인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드래프트에 참가를 하려면 경기력이 나와야 하는데 경기력이 안나오니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없는 것이었다. 국민은행 진출 건을 이야기 하는 감독에게 프로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스피드가 주특기인 그에게 허벅지 근육 부상은 상상 이상으로 버거운 상대였다.


하지만 다행히 경기를 하면 할수록 컨디션을 찾아 퀸스컵 대회에 참가해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는 등 활약을 펼치게 된다. 그래도 4학년 거의 반을 날린 취업 준비생의 마음은 불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기량을 높이 평가해준 사람이 바로 그의 스승 이회택(당시 포철감독) 이었다. 결국 1번으로 지명된 그는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게 된다.


데뷔전 - 첫 어시스트를 기록하다
89
년 한국프로축구대회, 4 29일 일화와의 경기. 배번 17번의 새내기 선수가 동대문 경기장에 나섰다. 대표선수 차출로 인해 주전이 대거 빠지게 되면서 박창현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첫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하게 된 상황에 대해 묻자 그는 쑥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드리블을 하다가 종부형이 보이길래 내줬는데 종부형이 잘 때려서 골이 되었어요. 전 사실 그게 어시스트 인지도 몰랐어요. 꿈꾸듯 경기를 끝내고 김포공항에 내려 스포츠 신문을 봤는데 어시스트로 기록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형들에게 이게 왜 어시스트인지 물었어요. 저는 그때까지는 완전히 만들어 줘야지 어시스트 인줄 알았거든요.” 


데뷔골 - 청구고 선배에게 빼앗긴 즐거운 추억
프로 입단 후 그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가끔 공격수로 경기에 나서곤 했다. 89시즌 그가 넣은 골은 3. 모두 그가 공격수로 나선 경기에서 나온 골이었다. 그의 데뷔골은 7 19일 대우와의 홈경기였다. 89년 득점왕을 차지한털보조긍연 선수와 나란히 투톱으로 나선 박창현. 그의 데뷔골의 반은 조긍연이 만들어 준 골 이라며 부끄러워한다. 스루패스를 받아 키고 들어가는 그의 눈 앞을 막아선 수비수들의 시선을 분산 시킨 선수가 바로 조긍연. 당시 조긍연을 막지 않을 팀이 어디 있었겠는가? “수비가 잠시 비운 사이로 재빠르게 치고 들어가 골을 넣었죠. 하지만 변병주 선배가 두 골을 연거푸 넣는 바람에 제 데뷔골은 묻혀 버렸어요. 청구고 선배에게 제 즐거운 추억을 뺏겨 버렸어요(웃음).” 묻혀버린 데뷔골의 추억을 그는 참 맛깔 나는 말솜씨로 유쾌한 기억으로 만들어 버렸다.


스타들의 틈바구니에서 - 정신없이 지나간 첫 시즌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포항제철은 시즌 시작 전에 늘 우승후보로 꼽힐 정도로 막강한 스쿼드를 자랑하는 팀이었다. 젊은 박창현에게 스타 선배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워낙 팀에 어려운 선배들이 많아서 첫 시즌은 세탁하고 운동하고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선배들요? 특별히 이흥실 선배가 기억이 남아요. 당시 89년에 도움왕을 할 정도로 대스타였잖아요. 그래서 같이 방을 쓰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약간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부드럽고 자상하셔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또 선배가 한창 몸 관리에 치중하실 나이라서 그런 면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에게 당시 그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뭐 첫 시즌은 29경기에 출전을 했는데 힘들게 없었어요. 23살인데 힘들게 어디 있나요? 뛰게만 해 주십쇼 했죠. 저는 첫 시즌에 어중간한 위치였어요. 누군가 빠지면 그 자리에 들어가서 메워주는 선수랄까? 미드필더가 빠지면 미드필더에, 스트라이커가 빠지면 스트라이커에 들어가는 그저 그런 선수.”


참으로 길었던 부상의 늪
확실하게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그에게 동계훈련은 또 다른 기회였다. 더 잘하려는 과욕때문 이었을까? 그는 동계훈련 도중 치러진 안동대와의 경기에서 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다. 당시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후방 십자인대에 대한 치료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국내에서 수술 없이 치료 후 경기에 나섰다가 다시 일본에서 수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재활 후 나선 경기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고통은 그를 그 뒤 2년이 넘도록 괴롭힌다.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돌아온 이회택 감독은 2년째 치료만을 반복하고 있는 그의 미래를 위해 실업행을 권유한다. 하지만 91년 마지막으로 치료를 해보겠다고 버텨 결국 91년 내내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다. “91년도 그냥 지나갔죠. 안 나아요. 아무리해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의 수술 자리를 만지는 그의 손길에서 당시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결국 일본에서 재활까지 모두 마치고 9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시즌을 또 날린 상태였다. 부상으로 2년을 쉰 선수를 그저 기다려 주는 프로팀이 어디 있을까? 그를 설득하는 이회택 감독 앞에서 그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 100만원만 주세요. 그냥 데리고만 있어주세요. 꼭 나아서 팀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당시 100만원은 최저 연봉이었다. 그로서는 마지막 승부수였다.


운명의 92
그렇게 맞이한 운명의 92. 동계훈련을 떠난 1군 선수단에 합류하지 못한 박창현은 잔류선수 8명과 포항에 남아 몸을 만들었다. 그때 같이 훈련하던 선수가 지금 선수로 뛰고 있는 김기동 (당시는 연습생). “그 때는 납 조끼도 입어보고 별 짓 다했어요. 그때는 그거라도 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되니 납조끼를 입고 줄넘기를 3단 뛰기 할 정도로 근력이 좋아졌죠.” 그리고 영남대와의 연습경기에서 축구에 굶주린 그는 4골을 넣어 다른 선수에게 향하던 이회택 감독의 눈을 돌리는 데 성공한다. 2년 반의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돌아온 1군 이었다.


울산현대와의 복귀전
1992년 5월 30.
울산현대전을 하루 앞둔 숙소. “너 내일 나가니까 준비해.” 감독의 선발 통보에 후반에 20분 정도 나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신문을 살피던 그는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의 이름이 선발 명단에 당당히 올려져 있었던 것. “또 데뷔전이었죠. TV중계를 라이브로 하죠. 오랜만에 뛰죠. 또 공이 안보이고 사람도 안보이고 막 죽을 것 같았어요.  15분 뛰다가 아 교체되겠다. 벤치만 쳐다보는 그런 상황 있잖아요. 그러다 어떻게 가슴으로 잡고 터닝슛을 했는데 골대를 살짝 빗나간 게 있었어요. 그 뒤로 공격적 작업이 수술 잘 되었어요.” 2년여만의 복귀전을 그는 이렇게 기억했다.


100
만원 월급을 벌금으로 날릴 뻔 - 아찔한 에피소드
울산현대전은 박태하 선수의 생일날. 마침 박태하 선수가 넣은 골로 이겨 선수들은 축하를 위해 숙소를 잠시 나갔다가 결국 허정무 코치에게 들키고 만다. 대우전에서 연승을 하면 용서를 해주겠다고 당근을 제시하는 허정무 코치. 하지만 허정무 코치가 준비한 채찍은 벌금 100만원. 당시 상황을 박창현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저를 포함해 6명이 걸렸어요. 우연찮게 이 선수들이 다 게임을 나가는 선수들 이었어요. 코치님께서는 너희가 모두 경기 나가 이기면 용서를 해주겠다고 하셨죠. 저는 100만원 버는데 100만원 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죠. 대우와의 경기는 정말 완벽하게 했어요. 경기만 잘하면 뭐하나요? 그날 유일한 찬스인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제게 왔어요. 노려서 찼는데 이게 웬걸. 골대를 맞히더군요. 모든 원망이 제게 향했죠. 저는 100만원 버는데 100만원이라니...... 그래서 찾아가서 염치없이 선생님께 좀 깎아 달라고 사정을 했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박창현은 비록 벌금은 약간 냈지만 경기에 꾸준히 나가게 된다.


1016
일 만의 골 - 달콤한 92년의 시작
1992년 6월 20
벌어진 LG 전 비록 팀은 졌지만 박창현은 이흥실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시키며 1016일 만에 달콤한 골 맛을 보게 된다. 이후 총 28경기에 나서 7골과 4개의 어시스트를 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칠 것을 예고하는 골 이었다. 이후에 파격적으로 주장으로 선임이 된 그는 책임감을 가지고 매 경기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된 레이스에서 일화와 우승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1992년 11월 18
포항전용구장에서 열린 일화와의 경기는 박창현에게나 팀에게나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이번 경기를 포함 2경기를 남겨 놓고 일화에게 승점에서 뒤진 2위를 차지하고 있던 포철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당시는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의 승점 제를 시행하고 있었기에 한 경기로 우승이 결정될 수 있는 상황 이었다.


신의손을 넘다 - 92년의 신데렐라 탄생!
이러한 절체 절명의 상황에서 빛난 선수가 바로 박창현! 미드필더 지역에서 날아온 박태하 선수의 절묘한 스루패스를 잘 잡은 박창현은 골문을 비우고 나오는 사리체프의 키를 넘기는 로빙슛으로 선취골을 넣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관중들이 보이는 철장에 매달렸다니까요. 아마 스틸야드 철장에 매달린 최초의 선수가 저 일겁니다. 두 번째 골도 멋지게 들어갔어요. 골 모서리에 잘 감겨서 들어갔으니.”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이유는 중요한 경기라는 사실도 있었지만 그가 두 골을 넣은 상대가 바로 그 유명한신의손이라는 사실 때문 이었다. 신의손이 누구인가? 당시 0점대라는 경이적인 방어율을 자랑하는 골키퍼가 아니었던가? 그에게서 두 골을 넣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지던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면 박창현의 두 골은 일대의 사건이었다. 박창현의 기쁨은 어떠했을까? “말도 못하는 기분이죠. 인터뷰가 끝난 뒤에 은퇴 말년을 앞두고 후배 경기를 보러 온 흥실이 형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포철에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안기다 
일화와의 우승 경쟁은 결국 마지막 경기까지 가게 된다. 일화가 유공을 꺽고 포철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 무조건 이겨야 우승하는 포철은 LG를 상대로 1골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차상해의 역전 결승골에 힘입어 포철은 세 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게 되었다.


우승 후 연말 시상식에서 기자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바로 MVP를 두고 박창현과 홍명보 중 누구를 수상자로 할 것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신인이면서 월드컵대표까지 겸한 스타 홍명보의 유명세와 부상에서 훌륭하게 복귀해 주장으로서 팀을 이끈 박창현의 공헌도가 맞붙은 것이다. 결국 MVP는 홍명보에게 돌아가게 되지만 박창현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92년 프로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부상의 재발 그리고 은퇴
93
년 리그 초반 4경기에 3골 넣으면서 잘 나가던 박창현은 후반으로 갈수록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94년에는 황선홍이라는 거물이 들어오면서 점차 주전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결국 95년 전남으로 이적을 하게 된다. 초반 8경기 뛰다가 부상이 재발하게 된 후 그는 결국 다시는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불굴의 의지를 기대하는 팬이 많았으나 그의 다리는 더 이상 그에게 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코치 박창현 그리고 기술 축구

저와 심봉섭 이라는 선수는 너무 빨리 꽃을 피워서 더 빨리 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고정운 선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곤 해요. 고정운 선수는 운동밖에 몰랐거든요. 저는 이대로 계속가도 성장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큰 착각을 했던 것이죠. 지금도 자신의 스피드나 재능을 앞세워 기고만장해 있는 선수들에게 충고를 해줘요. 그러지 마라. 그거 한 순간에 간다. 조금 더 자신을 낮추고 노력하라고요.” 그의 말에서 자신의 선수생활의 안타까운 전철을 후배들이 밟지 않기를 바라는 선배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단명한 이유를 기술 부족에서 찾았다. “기술이 좋지 않다보니 수비와 부딪치고 지나가야 했어요. 그러다가 걸리든지 하면 크게 다치죠. 결국 단명할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선수들에게는 기술을 강조하고 있어요. 첫 터치가 스피드를 대신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으니까요.”

축구는 가족과 더불어 내 삶의 전부

지긋 지긋한 부상과 인내의 시절을 함께한 축구. 그에게 있어서 축구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축구요? 이제는 나의 삶에 있어서 가족과 함께 제 삶의 전부죠. 축구를 함으로 인해서 제가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가족들도 그 영향을 받고. 지금은 축구와 떼 낼래야 떼어 낼 수 없는 사이가 되었죠. 떼어내면 죽은 사람이죠.”


One moment in time -
지도자로서 꿈꾸는 한 순간
제 인생에 92년처럼 다시 한 번 지도자로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지도자, 좋은 축구인으로 기억되고 싶네요. 기회가 주어질지 믿냐고요? 우리 집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될 것이다. 올 것이다. 성공 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 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이제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가족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죠.”


단 한 순간 빛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는 사람. 그가 바로 박창현 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기회라는 것이 그렇게 자주 주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그는 다시 한 번 주어질 기회를 믿고 있었다. 포항의파리아스 매직을 뒤에서 보좌하는 승부사 박창현. 그의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가 어느 날 K리그를 뒤흔들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출처 : 한국프로축구연맹 구웹사이트
편집 : 한국축구역사통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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