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할 당시의 구상범 ⓒ월간축구
2008 올림픽이 열렸던 중국 베이징. 그곳에서 18년 전 열렸던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은 구상범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한국은 홈팀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을 이기고 1990년 10월 1일 쿠웨이트와 4강 진출을 놓고 맞붙었다. 수비수 구상범은 결승골을 넣었고 팀은 1-0 승리를 거두었으며, 한국은 4강에 올라 동메달을 따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골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스타로 떠올라 1994년 미국 월드컵까지 참가했으며, A매치 56경기와 K리그 198경기에 출전한 대표적인 왼쪽 윙백 구상범을 만나보자.

초중고 감독의 외면, 축구부에서 밀리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구상범은 태권도 도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생활체육 축구팀을 만들게 되었다. 구상범과 축구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리 시작됐다. 그는 축구선수가 되기로 했다.

“축구를 한다고 하자 태권도 도장 사범이 집까지 찾아와서 아버지께 태권도를 계속 하게끔 사정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일언지하 거절하면서 반 강제로 숭곡초등학교 축구부에 가입시켰습니다.”

그는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는데 축구부 감독에게 많이 혼나면서 축구에 흥미를 잃어 축구부를 들락날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태권도 도장에서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새로 입문한 축구부에서 단체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구상범은 시합도 못나가다 경신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중학교 감독이 부르더니 “너는 너무 작아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라고 하는 바람에 중학교 때도 축구부를 들락날락거렸다. 이어 구상범은 축구 명문, 경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졸업할 때 키가 153cm 정도였으니 고등학교 감독도 그를 좋아할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고등학교 감독 역시 이렇게 말했다. “넌 공부를 해라.”

결국 그는 한동안 수업을 들었다. 더구나 2학년 초엔 무릎과 발목 골수염에 걸려 수술을 했는데 의사는 운동을 그만 두라고 했다. 재발하면 다리를 잘라야 했단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다 1년 만에 다시 축구를 했고, 쉬는 1년 동안 키가 커서 다른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많은 개인 연습을 하면서 마침내 인천대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임창수, 차경복 선생님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임창수 선생님에게는 체력적인 면을 많이 배웠고, 차경복 선생님에게는 기술적인 면을 많이 배워 비로소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운동생활에 가장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드디어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좋은 스승 만나고 개인 연습 꾸준히

축구 명문 경신중, 경신고를 다녔지만 축구부에서는 감독이 외면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인천대에서 좋은 스승을 만났고 꾸준한 개인 연습을 통해 프로팀 럭키금성(현 서울)에 입단했다. 입단한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대회에 전 경기 출장할 수 있었고, 1987년에 프로축구 베스트11에 뽑혔다. 곧바로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돼 1988년 1월 6일 아프로-아시안컵 이집트와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1988년 올림픽에 뛰었고, 아시안컵 준우승의 기쁨도 맛봤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1990년과 1994년 월드컵에 연속 출전했다.

“1990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은 아쉬운 점이 많은 대회였습니다. 훌륭한 실력을 가진 선배, 동료, 후배 등등 멤버로 보면 아주 좋은 팀이었죠. 지역 예선을 무패로 통과할 정도로 아주 강팀이었지만 월드컵에서는 긴장되고 경직된 플레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3패를 안고 예선 탈락했죠. 강팀과 경기를 많이 하며 월드컵을 준비했다면 달라졌을 겁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준결승에서 이란에 0-1로 져서 동메달에 그쳤지만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란도 강팀이지만 한국도 워낙 강해서 이란은 시종일관 수비 플레이를 했어요. 또한 한국을 대비해서 승부차기 연습만 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들의 조바심은 더해만 갔습니다. 결국은 서두르다 역습에 골을 내줘 0-1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죠. 선수시절 많은 경기 경험이 지도자 생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엔조 시포를 마크하는 구상범 ⓒ월간축구
그의 비결은 꾸준한 노력으로 반복적인 연습

수비의 명수, 구상범에게 명수비수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첫째, 좋은 신체와 스피드(순발력). 둘째, 빠른 판단과 강한 수비. 셋째, 정확한 패스와 헤딩이었다.

“세 가지를 다 겸비하기는 어렵겠죠. 신체조건이나 스피드가 없다고 해서 좋은 수비수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다만 좋은 신체 조건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축구선수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유리할 뿐입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많이 발전할 수 있지만, 좋은 신체 조건과 타고난 스피드는 연습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좋은 조건에 꾸준한 노력과 반복적인 연습 없이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축구를 일찍 그만두는 선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럴 때면 매우 안타깝죠.”

자신감 얻기 위해 언덕과 계단을 매일 뛰었다.

“현역 시절 윙백을 보면서 헤딩과 패스, 크로스는 항상 자신이 있었는데 스피드에서 보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기 위해 언덕과 계단을 매일 뛰었습니다.”

구상범은 K리그 198경기에 출전한 수비수이면서 한 번도 레드카드(퇴장)을 받지 않았다.
상대를 파악하는 준비를 했고, 공격수와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먼저 생각코자 노력한 덕분이었다.

“수비수가 시합 중에 제일 좋은 플레이를 하려면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가 왼발을 아니면 오른발을 잘 쓰는지 어떤 쪽으로 잘 돌아서는지 파악하고 수비를 하면 훌륭한 수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대인 수비를 하게 되면 발전할 수 없어요. 후배들이 항상 준비하고 먼저 생각해서 부디 홍명보보다 더 나은 수비수도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구상범 : 1964년 출생. 1988~1994년 국가대표 선수. A매치 56경기 2득점. 1986~1995년 K리그 198경기 16득점 20도움. 현 인천대학교 축구부 감독.)


글=손성삼(KFA 기획실 과장)
출처 : 대한축구협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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